[가지 않은 길 2] 미국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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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왜 미국 대학원을 바로 지원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먼저, 미국 석사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1. 미국 석사 과정
미국 석사 과정을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박사 과정은 학과 차원에서 등록금과 생활비(Stipend)를 지원해준다. 물론 예외적으로 일부만 지원되는 조건부 합격도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극히 드물다. 반면, 석사 과정은 학교와 프로그램마다 조건이 매우 다양하고, 우리가 흔히 아는 미국 석사 과정 대부분은 등록금이나 생활비 지원이 없다. 이는 한국과는 뚜렷하게 대조된다.
예를 들어 UCSD(UC San Diego)의 경우, 공식 홈페이지에 석사 학생을 위한 1년 예상 예산이 명시되어 있다.[2] 등록금, 수업료, 건강보험료 등을 포함한 직접 비용은 약 21,000달러이며, 식비와 주거비 등 생활비는 약 30,000달러로 산정된다. 여기에 교재, 개인 경비, 교통비 등 간접 비용을 더하면 총합은 약 59,000달러에 이른다. 이는 캘리포니아 거주자 기준이며, 비거주자(대부분의 유학생)의 경우에는 추가 등록금 약 15,000달러가 더해져 총 비용은 약 74,000달러까지 올라간다. 현재 환율 기준으로는 연간 9천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으로, 단지 석사 과정 1년을 이수하는 데도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 따름을 알 수 있다.
물론 지역과 프로그램에 따라 차이는 크지만, 이 정도의 비용은 대부분의 개인이나 가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집안이 매우 부유하지 않은 이상, 미국 박사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미국 석사는 가성비 측면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1) 상대적으로 쉬운 석사 입학
첫째, 석사 입학은 박사 입학보다 문턱이 낮다. 각 학교에서 공개하는 정량적인 지표(학점, 어학 성적 등)를 비교해보면 실제로 유의미하게 낮은 경우가 많다. 물론 박사 과정 입시는 정량적인 기준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석사 입학이 더 쉽고, 더 높은 랭킹의 학교에 진입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2) 동 대학원 박사
둘째, 해당 학교에서 박사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도 하나의 길이다. 교수 입장에서는 이미 본인 연구실에서 1년 이상 연구를 해왔고, 수업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계속 남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학생이라면 박사 과정 기회를 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국 교수들은 전 세계에서 우수한 학생들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단지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는 이유만으로 박사 입학을 보장하진 않는다. 하지만 본인의 역량을 직접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한 장점이다.
(3) 추천서
셋째, 해당 학교에서 박사로 진학하지 않더라도 미국 석사는 박사 과정 입학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석사 과정 중 교수에게 인정받는다면 박사 과정 지원 시 강력한 추천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추천서의 영향력이 매우 크며, 평판 좋은 교수의 진심 어린 추천은 합격에 큰 무기가 된다. 다만, 교수의 평판만큼이나 학생 자체에 대한 평가 내용이 중요하다. 교수가 학생을 잘 모르거나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면, 아예 추천서를 써주지 않거나 매우 담백하고 냉정하게 쓸 수도 있다고 한다.
(4) No function, No obligation
넷째,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또 다른 장점은 석사 과정 동안의 자유로움이다. 미국 석사는 자비로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수들이 석사생에게 프로젝트나 연구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즉, no funding, no obligation이다. 한국은 대부분 교수가 등록금과 인건비를 지원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 대가로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일정한 의무를 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석사생이 교수의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 연구실 이동이 자유롭고, 두세 군데의 랩미팅에 동시에 참여하면서 적합한 연구실을 탐색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러한 자유로움은 방학 중에도 적용되어 많은 석사생들이 여름방학 기간 동안 연구실 대신 외부 기업 인턴십을 선택하기도 한다.
(5) 적응
다섯째, 미국 석사는 미국에서의 생활과 연구 환경에 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문화적 차이, 커뮤니케이션 방식, 연구 스타일 등에 일찍 익숙해지는 것은 이후 박사 진학이나 취업 과정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장점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나는 이 옵션을 깊이 고려하지 않았다. 매년 1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과연 그만한 투자가 한국에서 석사를 할 때보다 얼마나 더 높은 연구 역량이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다. 네트워킹 측면에서 분명 이점은 있지만, 미국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연구 경험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어렵다고 느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장점들은 미국 석사 과정에 진학한 다른 학생들도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막상 입학하더라도 좋은 연구실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석사생 혹은 학부생들과의 경쟁이 존재할 수도 있다.
참고로 박사 과정은 대부분 학교에서 큰 틀의 구조가 유사하지만, 석사 과정은 학교마다 논문/비논문 트랙, 연구 중심/수업 중심 트랙 등 구조나 운영 방식이 꽤 다르게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프로그램 선택 시에는 커리큘럼과 트랙 구성, 요구 사항 등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주로 UCSD 석사 및 박사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한 점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1] [가지 않은 길 1] 국내 타대 석사 -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https://akdong55.tistory.com/268
[2] https://fas.ucsd.edu/cost-of-attendance/graduate-students/graduates_2025-2026.html
[3] <a href="https://www.flaticon.com/free-icons/degree" title="degree icons">Degree icons created by manshagraphics - Flatico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