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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1] 국내 타대 석사 -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https://akdong55.tistory.com/268
[가지 않은 길 2] 미국 석사 https://akdong55.tistory.com/269
[가지 않은 길 3] 미국 다이렉트 박사 https://akdong55.tistory.com/270
우리 학교 전기전자 전공생들을 보면, 공학 외의 길(전문직, 가업 승계, 고시 등)을 걷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 '학부 졸업 후 취업'과 '대학원 진학'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스타트업 취·창업은 논외로 한다.) 앞선 글에서는 대학원이라는 틀 안에서의 선택들을 논의했지만, 이번 글에서는 왜 학부 졸업 후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아래 기술하는 순서가 의사 결정의 중요도 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 가족의 기대
가장 먼저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싶다. 나는 학부 입학 시점부터 공학인이 되려면 박사 과정까지 마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공학을 전공하신 아버지는 박사 과정을 밟지 못한 것에 대해 일종의 아쉬움을 가지고 계셨고, 자녀인 나를 통해 이를 대리 만족하고 싶어 하셨던 면도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형제자매 중 이공계 전공자가 나 뿐이었기에 이러한 기대는 자연스럽게 대학원 진학이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2. 연구자로서의 적성
공학 연구가 나에게 꽤 잘 맞겠다는 생각은 학부 2, 3학년 때부터 종종 해왔다. 그러다 4학년 때 졸업 연구를 수행하며 '재미있게 연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하고, 사물을 만들고,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또래보다 좋아했다. 이들의 교집합에 있는 활동이 바로 '연구'였기에 연구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물론 새로운 것을 익히는 과정이 버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졸업 연구 자체는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다.
3. 경제적 부담의 부재
대학원 진학은 직장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즉각적인 경제적 여유를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가족의 경제적 지원이 있었고,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진학을 결정할 수 있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특별한 취미가 없으며 모임을 즐기는 성향도 아니어서, 생활에 큰 비용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도 대학원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현실적인 뒷받침이 되었다.
4. 박사 출신 임원 비율의 증가와 기회의 변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최고 기술 기업들의 리더십 포지션에서 박사 학위 소지자의 비율은 유의미하게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박사 임원 비율이 26.0%에서 32.4%로 상승했다는 통계도 있다[1]. 전체 임원 중 학·석사의 비율이 여전히 높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박사 학위자가 리더십 포지션에 오를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몇 해 전, 학부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사내 지원으로 석사를 취득하고 임원까지 지내신 분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과거에는 박사의 절대 수가 부족해 성실한 학부 출신에게도 도전적인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제는 그 기회가 전문성을 갖춘 박사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다. 공학인으로서 커리어 성장에 의의를 둔다면 박사 학위를 강력히 추천한다는 그 조언은 나의 선택에 확신을 주었다.
결론
요컨대, 박사를 할 만한 환경이었고, 박사 학위가 장래성을 높여줄 것으로 보였으며, 개인적인 체질과도 잘 맞았기에 학부 후 취업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였다.
여담.
생성형 AI와 같은 주제로 대화했을 때 AI는 '대체 불가능한 실력'이나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다는 직감'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이 의견에 깊게 공감하지는 않는다. 박사 학위 자체가 실력을 보장하지는 않으며, 대체 불가능성은 신분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늦깎이로 공부를 시작해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기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도 특별히 없었다. 다만, 가정이 생기면 미래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1] 홍석호. (2024. 03. 14). 삼성전자 임원, ‘설카포 박사’ 늘고 빅테크 출신도 약진.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40314/123980482/1
[2] amonrat rungreangfangsai. 취업 아이콘. Flaticon. https://www.flaticon.com/kr/free-icons/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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