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제 : 대학원생이 보는 학부생
최근에 학부생이 선배에게 빨리 인정받아 본격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실적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학부생으로서 대학원생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까지 되려면 보통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봐서 글로 남긴다. 대학원에 입학한 지는 1.5년, 학부 인턴으로 처음 연구를 접한 지는 3년이 되어 가니 연구 경력의 절반씩을 두 신분으로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내 관점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1. 멘토 찾기
편의상 졸업연구 사수가 되는 것이나 세미나 리드로서 학부생을 챙기는 것을 멘토링이라 통칭하겠다. 학부생 입장에서 실적을 쌓는 가장 빠른 경로는 결국 좋은 멘토를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무래도 내 전공이 하드웨어 연구이다 보니 선배 도움 없이는 툴 접근성에 제한이 크고, 특히 제작 단계에서는 최소 수백만 원이 들기 때문에 혼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 어려운 특성 때문에 이처럼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연구실 안에서 학부생에게 실질적인 관심을 갖는 선배가 누구인지, 연구를 가장 열심히 하는 선배가 누구인지, 내가 관심 있는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그 교점에 있는 사람의 눈에 빨리 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리하다.
2. 멘토링을 맡는다는 것
대학원생에게 멘토링은 경제적 인센티브가 없거나 적다 보니 자발적으로 맡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단 멘티가 배정되면 전체적으로 잘 챙겨주는 편이다.
여기서 현실적인 수치를 짚고 가자면, 우리 연구실 기준으로 거쳐 간 학부생 중 실제로 입학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자대생 30~60%, 타대생 60~90% 정도다. 넓은 분포로 나타내는 이유는 매해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즉, 사수 입장에서는 나갈 확률이 절반 정도인 사람을 키우는 데 상당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수업을 3~5개 들으면서 적당히 출근하는 학부 연구생 수준으로는 최소 1년은 있어야 이론 바탕이나 툴 사용 역량이 도움이 되는 수준까지 쌓이고, 풀타임처럼 한다고 해도 반년은 해야 한다. 또한 언급한 기간은 최소치이고, 같은 주제로 연구하게 되면 품이 계속 들어간다. 그러니 다들 먼저 나서서 맡으려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선배들 말로는, 자대생은 인턴으로 들어오면 입학할지 말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안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전혀 안 올 것 같았는데 오는 경우도 많다고. 그래서 꼭 진학하겠다는 말 자체는 큰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 같다.
3. 열심의 기준을 상당히 높이자
인턴 기간 동안 동료로서 5명, 대학원 입학 후에는 15명 정도의 인턴을 만났다. 약 20명을 보며 느낀 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열심'의 허들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가 처음에는 열심히 하겠다고 말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성공하고 싶다고, 논문 성과도 내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행동 양식은 사뭇 다르다.
솔직히 말하면 절반 이상은 맛보기로 온 느낌이 난다. 연구라는 배의 선장이 되기 위해 3등 항해사에서부터 고된 일을 자발적으로 맡아서 단계를 밟아 올라가려는 사람보다는, 관광객 마음으로 배를 탄 사람이 훨씬 많다. 졸업 요건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실제로 연구를 처음 하는 것이다 보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축구가 재미있어서든 부모님이 데려가서든 처음 축구 학원에 갔는데, 처음부터 선생님이 왜 프로처럼 안 하냐고 닥달할 수는 없는 것처럼. 그래도 있는 기간 동안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꼭 실적이 가시권에 있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떤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해진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시간을 쏟아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선배들을 보면서 느슨하게 체험해 보는 것도 나름의 유용성은 있겠지만, 고강도를 내가 버틸 수 있는지, 이 일이 지향하는 바와 내가 맞는지(즐거움을 느끼거나 의미를 느끼는지)를 확인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 조용한 학부생
랩 미팅 때 학부생들은 너무 조용하다.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으면 그냥 넘어가거나,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이해가 쌓이겠지 하는 태도가 보인다. 그런데 연구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질문을 주저하는 이유가 혹시 "바보 같은 걸 물어봐서 혼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때문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 없는 것보다는 질문을 하는 게 항상 낫다. 대학원생을 지치게 하는 건 모르는 게 많아서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아무 맥락 설명이나 준비 없이 하는 질문이다.
대학원생 눈에 띄는 질문에는 나름의 프로토콜이 있다. [내가 이해한 바] + [내가 찾아본 자료] + [막힌 부분에 대한 나름의 가설]을 갖추어 오는 것이다. 예컨대 랩 미팅 때 이해가 안 된 내용이 있었다면 직접 관련 논문이라도 찾아보고, "선배님, 이 파라미터가 잘 이해가 안 가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A 논문에서는 이런 맥락으로 해석하던데, 선배님 연구도 같은 방향으로 이해하면 될까요?"라고 묻는 식이다. 이 과정 자체가 본인에게는 가장 확실한 공부가 되고, 사수 입장에서는 이 친구가 내 연구에 진심이라는 안정감을 얻는다. 인정은 결과보다 태도에서 먼저 온다는 건 이런 뜻이다.
5. 다시, 처음 질문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로 돌아가자면, 그 학부생이 물어봤던 건 사실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었다. 선배에게 빨리 인정받아서 본격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실적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봤던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결국 이 글에서 계속 한 말과 같다. 열심의 기준을 높이고, 모르는 건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그 결과로 인정을 받아서 연구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순서가 있다. 가끔 나오고, 출근은 늦게 하고, 퇴근은 일찍 하고, 주말은 안 오는 상태로는 그 기회를 얻기가 매우 힘들다. 대학원생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면, 그런 학부생에게 중요한 연구를 같이 해 보자고 먼저 손 내밀기가 쉽지 않다. 인정은 결과보다 태도에서 먼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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