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관악동의 가장 최근 글은 "인기랩?! 대학원 연구실 고르는 법"이다. [1] 최근 2주간 조회수가 가장 높은 글이기도 한데, 연구실을 고를 때 신경 쓰면 좋은 요소들을 꽤 자세히 다룬 글이다. 오늘은 그 글에서 계속 등장했던 '인기랩'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조금 더 파고들어 보려 한다.
인기랩은 '인기'와 '랩(연구실)'의 합성어다. '인기(人氣)'는 사람 인(人)과 기운 기(氣)가 합쳐진 말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운, 즉 대중적인 관심을 뜻한다. 보통 인기랩이라 하면, 진학을 희망하는 사람—주로 학부생—이 유독 많아서 대학원생이나 인턴으로 들어가기조차 힘든 연구실을 가리킨다.
지난 글에서도 이 단어를 썼고 평소에도 자주 쓰지만, 사실 나는 '인기랩'이라는 표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좋은 연구실'이라는 뜻으로 흔히 '인기랩'이라 부르곤 하는데, 이 표현을 쓰다 보면 '연구실이 연구실로서 본질적으로 좋다'는 점이, '대중이 일반적으로 좋아한다'는 속성에 가려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기 대학'이나 '인기 직장'이라는 말이 어딘가 어색하게 들리는 것처럼, '인기랩'이라는 용어 자체도 나에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연구실에 진학할 정도라면, 이미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이 충분히 무르익은 상태일 텐데, 그렇다면 실질적인 경쟁자는 막연한 일반 대중이 아니라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치 대중을 향한 뉘앙스를 가진 '인기랩'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컨대, 연구실을 평가하는 척도로서 '인기(popularity)'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다소 이상해 보인다는 것이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과, 그 분야에 진심인 소수가 좋아하는 것은 결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인기랩이란 단어는 이 둘을 뭉뚱그려 버리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고 딱히 이를 대체할 만한 적절한 한국말 단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또 다른 표현으로 '대가랩'이 있는데(영미권 사람들도 Big Guy라고 한다), 이는 아무래도 영향력 있는 논문을 많이 낸 연구실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대가랩이라고 해서 반드시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인기랩이라고 해서 반드시 대가랩인 것도 아니다.
대가랩은 대체로 인기도 있는 편이지만, 인기가 없는 경우라면 아무래도 인성 문제, 지나치게 빡센 분위기, 혹은 지나치게 지엽적이거나 실용성이 떨어지는 연구에 몰두하는 점 등이 이유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인기랩이지만 대가랩은 아닌 경우도 있는데, 이런 연구실은 교수가 비교적 젊거나 연구 생산력 자체는 다소 떨어질 수 있어도, 인품이나 복지(월급 포함) 면에서 학생 친화적인 경우가 많다.
일단은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인기랩이란 단어를 계속 쓰도록 하겠다.
인기랩의 요소
인기랩은 아무래도 다음의 요소를 갖추고 있는 듯하다.
(1) 지원 경쟁률
모든 사람을 받아주지 않는다. 선발 인원에 비해 지원 인원이 더 많다. 인터뷰 단계에서 스크리닝이 있기도 하고, 인턴 기간을 거친 뒤 다시 한 번 스크리닝이 있기도 하다.
이것이 인기랩이란 단어와 가장 맞닿아있는 척도일 것이다. 한마디로, 들어가기 어렵다는 요소다.
또한 관련 있는 척도로서 보통 자대생 비율도 있다. 자대생들은 아무래도 타대생에 비해 교수에 대한 정보량이 많다 보니(주로 선배들을 통한 정보), 자대생들이 인기랩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타대생 입장에서는 정보가 부족한 만큼 인기랩의 존재 자체를 늦게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정량적인 컷(학점이나 출신 학교 등)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지원자 수 자체를 걸러내기 위한 장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 인기 연구 분야
좋은 연구실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글에서 많이 했으니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척도를 보자면, 전기전자공학 기준으로 볼 때 인기랩은 사실 인기 분야가 전제되고, 그 이후에 진로·실적·인품 등이 영향을 주는 경우가 큰 것 같다. 논문도 잘 내고 인품도 좋지만, 분야 자체가 협소하거나 전망이 밝지 않으면 인기랩이 되기는 어려운 듯하다. 즉, 분야의 '시대적 흐름'을 잘 탄 연구실이 인기랩이 될 확률이 높다.
(3) 졸업생 진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졸업 후 원하는 커리어 트랙을 잘 밟는다. 주로 학계(외국 명문대의 포닥 혹은 교수), 미국 기술 기업, 한국의 최상위 기술 기업들로 가는 비율이 높으면 인기랩이 되는 듯하다. 특히 후배들 입장에서는 '선배들이 어디로 갔는가'가 그 연구실의 실질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지표이기 때문에, 진로는 생각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
(4) 연구 실적
실적은 보통 대가를 판별하는 기준인지라, 이 또한 중요한 요소다. 단, 논문의 절대 편수나 인용 수보다도 특정 분야 내에서의 상대값이 중요한 듯하다. 또한 주 교신저자, 혹은 젊은 교수라면 1저자로서 얼마나 실적을 내는지가 중요할 듯하다. 즉, '그 분야에서 얼마나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가'가 핵심이다.
(5) 인품 및 복지
그리고 당연하게도, 인품 및 복지를 잘 지원해주는 것도 인기랩의 중요한 요소가 되겠다. 실적이나 진로가 아무리 좋아도, 학생을 대하는 태도나 처우가 좋지 않으면 입소문이 금방 퍼지는 것이 요즘 분위기이기도 하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연구실 진학을 고려 중인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명료히 하고, 그 기준에 따라 연구실을 스스로 조사하고 평가한 뒤 의사결정을 내리라는 것이다.
물론 연구실을 고민하다 보면 인기랩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고, 실제로 여러 기준을 다 따져본 끝에 인기랩이 결국 최선의 선택지로 판명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건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하나하나 검증한 결과로서 인기랩에 도달한 것이지, 처음부터 '인기'라는 타이틀 자체를 좇아서 도달한 것과는 다르다.
순서가 바뀌면 결과가 같아 보여도 과정에서 놓치는 것이 생긴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좋아 보이는 연구실과, 내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정말 나에게 맞는 연구실은 종종 겹치지만, 항상 같지는 않다. 그러니 인기랩이라는 딱지에서 출발하지 말고, 나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연구 분야인지, 진로인지, 지도 스타일인지, 워라밸인지—를 먼저 정한 뒤 그 잣대로 연구실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 과정 끝에 만난 연구실이 우연히 인기 랩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령 아니더라도 그게 나에게는 더 맞는 선택일 수 있다.
[1] 인기랩?! 대학원 연구실 고르는 법, 공학관 악동, https://akdong55.tistory.com/290
'노하우 | 대학원 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기랩?! 대학원 연구실 고르는 법 (0) | 2026.07.19 |
|---|---|
| 대학원 컨택 이메일 잘 쓰는 법 (0) | 2026.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