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a year's research, one realizes that it could have been done in a week." Sir William Henry Bragg
"일 년간의 연구 후 일주일 만에 끝낼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윌리엄 헨리 브래그 경
5. 종합설계 [24년 1~6월, 4-2]
1) 주제 선정 [1월 초, 2주 내외]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다시 랩실로 복귀했다. 마지막 시험을 마친 후, 12월 말부터 바로 출근했다. 첫 주는 통신시스템 프로젝트를 마감하고, 지난 학기 자료와 블로그를 정리하며 보냈다.
지난 방학 동안, 연구실에서 누가 어떤 주제를 연구하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했고, 우리 연구실에서 종합설계를 한다면 어떤 주제를 선택할 수 있을지 감을 잡았다. 관심 있는 주제의 선배에게 한 학기 동안 연구할 수 있는 주제가 있는지 물어봤다. 선배는 자신이 시뮬레이션으로 한 번 검증해보고 싶은 내용이 있지만, 다른 연구와 과제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아 미루고 있어서 본인은 못하고 있는 주제를 제안했다. 이미 전체 셋업이 갖춰져 있어 약간의 수정만 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이를 약 1-2주 정도 공부했다.
그 선배와 친하기도 했고, 주제가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으며, 시뮬레이션 툴을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해당 주제를 선택해도 되는지 교수님께 여쭈어보았다. 교수님은 그 주제가 너무 성숙하고 정립된 것 같다며 비추천하셨고, 대신 도전적인 주제를 권하셨다. 그 주제가 바로 지난 방학에 발표한 양자컴퓨터 하드웨어에 쓰이는 기술(Parametric amplifier, Reflection amplifier)이다. 이 기술을 양자컴퓨터가 아닌 6G 통신의 후보군 기술인 Reconfigurable Intelligent Surface(RIS)에서도 사용 가능한지를 파악하는 것이 큰 틀이었다. 우리 연구실은 현재 Passive RIS를 연구 중인데, 이론적 기반을 이해하면 추후 Paramp나 Reflection amp를 통해 Active RIS까지도 도전해볼 수 있다는 것이 연구실 차원의 모티베이션이었다.
2) 주제 배경지식 발표 [1월 초]
1월 초반의 정기 랩미팅 시간에 앞으로 진행할 연구와 통신 시스템 전반에 대한 기초 자료 조사를 발표했다. 원래 종합설계를 하는 인턴은 정기 미팅에서 발표할 필요가 없지만, 박사과정 선배들이 자주 발표할 것을 추천하여 자발적으로 했다. 자료를 준비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짚어주셔서 도움이 되었다.
Key word: RIS, Relay technology, Phased array, Reflectarray antenna, Reflection amplifier, Negative resistance
3) 시뮬레이션 툴 익히기 [1~2월]
나의 종합설계는 주로 ADS와 Matlab으로 진행했다. ADS는 PSPICE의 마이크로파공학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전력전자 분야에서도 사용된다. 방학 동안 주로 ADS를 익혔다.
유튜브 튜토리얼을 보고 따라 하며, 내가 하려는 주제의 논문들을 흉내내려고 했다. 이 주제를 하는 선배가 없어서, 여러 선배들에게 조금씩 물어봤다. 당시 매우 특수한 항목까지 찾아봤는데, 한 번은 대학원 선배들이 ADS 특정 기능을 사용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할 때 옆에서 답한 적도 있다.
이때 상당한 좌절감을 느꼈는데, 2-3시간, 내지는 며칠 동안 열심히 고민한 결과가 '어떤 버튼을 몇 개 순차적으로 잘 누르면 특정한 그래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수님들이나 대학원생들은 공부와 연구는 다르다고 자주 말한다. 이런 점에서 차이를 느꼈다. 학부 프로젝트는 보고서에 어떤 내용을 첨부하면 되는지 친절히 알려주고, 상당수는 툴 사용법까지 A-Z로 가르쳐준다. 종합설계를 통해 경험한 것이지만, 연구에서는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무슨 플롯과 데이터를 넣어야 하는지, 이를 위해 어떤 시뮬레이션 셋업을 써야 하는지 대부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몇십 시간, 몇백 시간을 쏟아부은 결론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초반에는 시간을 많이 들여도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학부 공부에서 짧은 호흡의 공부에 정신적으로 맞춰져 있었던 것이 원인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툴을 어느 정도 익히고, 생각한 것을 어느 정도 창에 띄울 수 있게 되자, 안 되는 것이 기본(default)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점차 흥미를 붙였다.
Key word: Circulator, Varactor, Time-domain simulation, S-parameter simulation, Frequency simulation, Pump signal
4) 세부 주제 변경 [2월 말]
시뮬레이션 공부와 더불어 이론 공부도 병행했다. Parametric amplifier 논문을 읽었는데, 물리학 논문이 많아 거의 이해하지 못해 쩔쩔맸다. 또한, parametric amplifier를 포함하는 넓은 집합인 reflection amplifier는 트랜지스터 이전 시대의 amplifier 후보로서 60-70년대까지는 어느 정도 논문이 나오다가 한동안 맥이 끊긴 분야여서, 정립된 논문을 찾기가 힘들었다. 한 마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었고, 간신히 이해했다고 해도 다음 논문을 보면 아예 다른 내용으로 다가와 공부를 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몇십 년 전에 출간된 책을 읽어보았는데도 잘 갈피를 잡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도대체 무엇을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ADS의 결과를 Matlab으로 옮긴 다음, 이것저것 프로세싱해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되지 않았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총체적 난국이었다. 결국, parametric amplifier 시뮬레이션을 포기하고, 좀 더 일반적이고 쉬운 주제인 reflection amplifier stability로 선회했다.
Key word: Stability analysis, Unconditional Stability/Conditional Stability, 3D-Smith chart, Negative Impedance Converter
5) 정기 미팅 [2월~5월, 2~3주]
아! 이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다. 앞서 대주제를 선정하고 난 후, 교수님에게 "누가 제 사수인가요?"라고 여쭈어보았다. 교수님은 "사수는 저예요."라고 답하셨다. 명목상 종합설계 담당 조교님은 앞서 말한 다른 주제를 제안해주셨던 선배였지만, 사실상 내 조교님은 교수님이었다. 담당 선배는 ADS 사용과 마이크로파공학적 지식 관련해서 많은 도움을 주었고, 초창기에는 종합설계 방향에 대해 안내해주었지만, 선배에게도 완전히 낯선 주제라 어느 순간부터는 선배가 더 이상 가르쳐줄 수 없었다.
2월부터 5월 말까지 2~3주 간격으로 교수님과 개별 미팅을 진행했다. 발표 때마다 거의 20-50쪽 분량의 PPT 데이터를 들고 갔다. 여러 회로 셋업과 플롯이 첨부된 PPT였다. 초반에는 내가 한 일을 시간 순서대로 배치해서 갔는데, 교수님께서 이해를 잘 못하셨다. 내가 불필요한 플롯을 너무 많이 포함하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다 보니 생긴 문제 같았다. 나는 이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이러한 시뮬레이션을 했다, 참이더라 혹은 이렇게 하면 안 되더라, 그래서 다시 이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이런 시뮬레이션을 했다라는 구조로 PPT를 만들었는데, 교수님이 내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셨다. 돌이켜보면, '이것을 증명하고 싶었다'를 수식이나 그림보다는 말로 설명하려 했던 점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일으킨 것 같다. 이후에는 최대한 듣는이의 입장에서 PPT를 준비하고, 덕지덕지 자료를 배치하기 보다는 중요한 순으로 배치하고, 중요도가 낮지만 필요할 듯한 자료는 appendix의 형태로 정리했다. 또한, 마이크로파공학 외의 학부 지식에 대해 당연하다고 여기고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 교수님께서는 그때마다 재설명을 요구하셨다. 그래서 다음 미팅 때 이를 몇 차례 다시 정리한 적이 있다. 나와 상대가 공통된 기반 위에서 논의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다.
박사 졸업자들의 책이나 유튜브를 보면 박사 과정에서 배운 소통 능력을 배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전까지는 당연히 의사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말만 또박또박하고 논리적이면 의사소통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종설 미팅을 하면서 이 역량이 모두가 태생적으로 갖춘 역량이 아니며 아니며, 적절한 방법론을 숙지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6) 중간리포트와 중간고사 [4월 말]
개별 미팅을 몇 차례 하면서 정리한 데이터와 이론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중간리포트는 자유 분량이었지만, 20쪽 정도 작성했으며 큰 부담은 없었다.
그 학기 중간고사에서 여러 실수를 많이 했다. 집중력 부족이 큰 문제였다. 이 원인은 종합설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연구는 2시간의 기민한 상황 판단보다는 오랜 시간 동안 깊이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는데, 이러한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다가 빨리 정보량을 처리해야 하는 시험을 보니 다른 학기 때와는 다르게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물론 연구에 집중하느라 다른 공부를 소홀히 한 것도 있었다. 적잖은 시험을 보는 입장이라면, 중간고사 2주 전부터는 연구를 아예 멈추고 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일 수 있겠다.
7) 중간고사 이후 [4월 말~6월 초]
중간고사 이후에는 연구를 아주 열심히 하지 못했다. 여러 셋업을 시도해보았지만, 예상했던 것만큼 reflection amplifier의 일반 규칙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학회 논문에서는 아직 일반 규칙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이것을 보고 동기부여가 떨어진 것도 있다. 체력적으로도 부침이 있어 연구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했다. 자기관리를 더 잘하고, 마이크로파공학적 기본기와 경험이 더 있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중간고사 이전에는 여러 stability criteria를 적용하면서 어떤 조건에서 어떤 것이 말이 되는지, 쓸 수 없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중간고사 이후에는 이들을 한 번에 통합하고 서로의 상관 관계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생각만큼 명료하고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는 못했다. 특수한 상황에서는 이 방법이 맞고, 또 다른 상황에서는 저 방법이 맞다는 식의 결론이 최선이었다.
Key word: Pole-zero analysis, Transient-state, Steady-state, Barkhausen's criteria, non-Foster circuit element
8) 최종 발표와 리포트 [6월 초]
중간고사에서의 잦은 실수를 기억하며, 발표와 최종리포트 작성을 6월 초에 빨리 마무리했다. 발표는 영어로 진행했고, 약 40분 동안 발표한 후 10분 동안 질의 응답을 했다. 종합설계 발표치고는 꽤 긴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원생 청중들에게 이 연구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가능하며,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논의의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 것이 내 종합설계의 주 목표였기에 발표가 길어졌다고 생각한다. Software/Hardware implementation보다는 theory & survey 성격을 띠는 발표라 부득이 길어졌다고 본다.
교수님과 대학원 선배들이 발표를 잘했다고 해주셔서 기뻤다. 특히 교수님은 reflection amplifier의 stability에 대해 통합적인 이해를 시도한 점을 높이 평가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제사로 나는 윌리엄 헨리 브레그 경의 문구를 인용했다. "일 년간의 연구 후 일주일 만에 끝낼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돌이켜보니 내가 진행한 연구는 굉장히 하찮게 느껴진다. 이미 이 분야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받아들이는 전제 조건을 단순히 한 번 들춘 느낌이다. 어쩌면 이게 연구의 속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아주 혁신적인 것이었을지라도, 어느 순간 너무 당연한 것이 되기 마련인 것이다.
2024년 6월 2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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