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후배를 위해 글을 쓴다.
어려운 이유 - 요구하는 역량과 스킬이 다양하고 많다.
나는 이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우리 학과는 오전에 하는 공부와 오후에 하는 공부가 판이하고, 월수에 하는 공부가 화목에 하는 공부와 다를 수 있다. 아침에는 수학 문제 풀고, 점심에는 암기 달달 하고, 저녁에는 코딩을 할 수 있다. 이충용 교수님은 이를 두고 과목 간 homogeneity(동질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예컨대 화학공학과를 보면 전공은 대체로 물리화학, 유기화학을 베이스로 뻗어나간다. 그 말인 즉 코어 과목 몇 개만 잘 잡아두면 뒷 과목 공부가 쉬워지고, 반대로 몇 과목 놓쳐도 3,4학년 때 앞 내용을 다시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다른 인문/사회/경영/공학/이학도 얼마간 통용된다. 몇 개의 전공 핵심을 잘 캐치하고 방법론을 잘 익히면, 공부를 이어가기가 쉬운 편이다. 우리 학과도 마찬가지로 핵심 과목 몇 개를 잡으면 계속 공부하기가 수월해지지만, 문제는 그 핵심 과목의 개수가 많으며, 한 과목을 잘 했다고 해서 다른 과목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단기적인 성적 취득의 의미에서)
1학기
기초회로
디지털논리회로
데이터구조
2학기
전자회로
전자기학
신호및시스템
이렇게 딱 적어놓으니 별 거 없어보이지만,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는 과목 관의 연관성이 매우 떨어져 한 과목을 할 때마다 고역이다. 기초회로이론은 처음에는 만만해서 손 놓고 있다가 중간고사 이후 갑자기 수학과 공식이 쏟아져 나와서 멘붕오고, 디논은 사람들이 제일 쉽다고 하는데 갑자기 게이트가 여러개 연결되고, 데이터구조에서는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언어로 코딩을 해야 하고 갑자기 GPT의 시대라고 문제도 어렵게 주시고, 전자회로에서는 이런저런 공식이 나오는데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이 반도체 반도체하는데 이걸 평생할 자신이 없어지고, 전자기학에서는 1학년때 대충한 공수2 내용이 기본 전제로 나오고, 신호및시스템은 어디다 써먹어야하는지 모르겠고 일단 푸리에 변환 공식만 외우게 된다.
1. 다 잘할 필요는 없다.
우리 중등 교육문화가 다 잘하는 학생을 높게 평가하고, 특출난 재능을 간과하는 경향이 었다. 또한 대학교 또한 이런 경향을 지니고 있다. 단적인 예로, 학점으로 상과 장학금을 주는 제도가 그렇다. 이 제도에서는 어떤 걸 엄청 잘하는 것보다도, 특별히 못하는게 없는게 훨씬 고평가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은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러한 까닭에 몇 과목 못 보면 좌절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는 크게 개의치 않으면 좋겠다. 꽤 열심히 하면 C이하로는 받을 확률이 적고, 그리고 받았다 하더라도 재수강 기회가 4번이나 있으니까 그런 것만 쓱삭쓱삭 지우면 된다. 그리고 설령 4개보다 많이 받았다 할지라도, 그게 큰 문제가 될 일은 거의 없다 본다. 나도 F 5개 받았고, 아직 2개밖에 안 지웠는데, 교수님들한테 인턴 기회 얻고, 대학원 진학하면 받아주시겠단 말 듣고, 나아가 '연구하면 잘하겠다'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교수님들에게 가서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 내 비전과 꿈, 분야에 대한 관심, 그 동안 한 준비에 대해 1시간 가까이 면담하면서 다 쏟아내놓고 오니, 교수님들이 나를 꽤 좋아하신다. (이에 대한 근거를 여기서 밝히기는 어렵지만, 궁금하면 개인적으로 연락 달라.)
오히려 나는 다 잘하기 위해(정확히는, 모든 과목에서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자신의 호기심을 억누르고, 듣고 싶은 수업/성장 기회가 있는 수업을 안 듣고, 시험 쉬운 수업/학점 잘 주는 수업만 찾아다니고 정작 깊은 이해와 공부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라고 본다.
모두가 철인3종, 근대 5종 선수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앞서 말했다시피 한 과목 못했다고, 그 이후 후속 과목을 포기하지는 말고, 3,4학년 때 중요한 과목을 다 챙겨들으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2.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김학배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이 관계를 깨닫고 통찰력을 얻기 까지 적어도 10년은 걸린다고 한다. 3/4학년 과목에서 상당 수 교수님들은 학기 초반 선수과목 복습에 상당한 시간을 쓰시고, 과목 간의 관계를 전달하시고자 무진 노력을 하신다. '아, 이게 그 내용이었어?', '아, 이게 이렇게 쓰이는 거였어' 이 사실을 체감하려면 학부 수준의 수업이 아니라, 대학원에 가서 연구하고 기업에서 직접 부딪히며 개발해보아야 알 수 있다고 한다. 2학년 과목 시험 몇 개 못 보고, 첫 학기가 어려웠다고 본인의 재능과 적성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려면, 유전적인 요인, 사회환경적인 요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미래가 그려져야 한다. 비전이 있어야 한다. 이를 갖추고 기르는 법에 대해서는 다음 챕터에서 소개하겠다.
3. 스킬 일부는 방학 때 미리 익힐 필요가 있다.
못하는 데 좋아할 수가 있나?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어떤 걸 익히는데 몇 시간 씩 걸리고, 사생활을 포기하고, 어차피 해도 인정 못받는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 어떤 걸 좋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몇 가지 사정으로 나는 엄청 꼬이면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고, 항상 준비를 해야 했다. 다음 학기에 파이썬 수업이 있으면 파이썬을 방학동안 배웠고, 데이터구조를 듣기 전에는 C플을 독학해서 BOJ에서 매일 2~3문제씩 알고리즘 문제를 풀었고, 신호및시스템은 수강신청하고 매트랩을 2주 동안 익혔다.
보통 학생들의 마음가짐은 왜 안 가르쳐준 내용을 시험보고 프로젝트를 하는거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공학을 계속하면 모르는 것은 찾아서 배워야 한다. 왜 실라버스에서 이런 내용을 다 한다고 나오는데 미리미리 하자. 그리고 그런 내용을 살펴보면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그냥 처음에 인터페이스나 상황, 프로그램 등이 낯설어서 두렵고 성가신거지 별 내용 없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말하는 스킬이란 꼭 소프트웨어 스킬로 국한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공학수학2이 자신이 없는데, 전자기학1을 보통 마음가짐으로 들으면 수업이 이해가 안 되고, 호기심을 못 느끼고, 잘 못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면 어떡하겠는가? 복습하고 예습해야 한다.
모든 학생들이 방학때도 열심히 공부하고, 전공공부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음 학기에 어려움이 자명하게 예상되거나, 자신에게 큰 약점이 있을 때, 혹은 공부(학점)을 잘 하고 싶어서 한두과목을 안정적으로 잡고 학기 중에는 여유롭게 시간 분배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미리미리 하면 좋다. 절대 그 양을 많이 잡고, 부담스럽게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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