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말 무렵, 학부 인턴으로 있던 연구실에서 다함께 학회 겸 MT를 다녀왔다.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학기 중에는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 방학에 돌아갈 계획이다.) 학회 신청을 안 한 인턴과 대학원생들은 하루 오후만 짧게 있으며 교수님과 대학원 선배의 발표를 듣고, 대부분의 시간은 놀았다. 매일 수영장에 가고, 바다도 가고, 족구도 하고, 밤에는 바베큐와 마피아 게임도 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학회는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으나, 동시에 내가 그동안 잃어왔던 것 그리고 앞으로 잃어갈 것들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 또래에서 대여섯살 많은 사람들과 나흘 동안 붙어있으면서 그들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내 삶의 궤적이 남들과 꽤 다름을 느꼈다. 느끼고 또 느꼈다.
나는 그간 꽤 열심히 살아왔다. 지난 2학기는 개강부터 마지막 시험까지 단 하루를 제외하고 항상 학교에 나왔다.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매일 나왔다. 추석에도 집에서 간단히 제사에 얼굴만 내밀고 학교를 갔다. 딱 하루 학교를 안 나온 날은 연세대 대학입학 논술 고사로 도서관이 문을 닫은 날뿐이었고, 이날은 집 근처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내 삶의 방식에 종종 문제 의식을 느꼈다. 여유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곤 했다. 이러한 삶은 영속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동아리라도 가입해볼까하고 마음 먹었으나, 항상 마지막에 단톡방을 초대해주겠다고 하면 이번 학기 시간을 핑계 삼아 못 들어가겠다 주저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어땠을까. 22년부터 학업에 매몰되어있었다고 생각하면, 18년부터 21년까지는? 18년 1학기에는 대학에 대한 회의감에 학교 수업은 안 들었지만, 책 읽기와 글쓰기는 무척 열심히 했다. 18년 가을 학기는 휴학하며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공부를 지속하기 원치 않으면 차라리 놀다 오라는 부모님의 말을 따랐다. 그떄는 꽤 열심히 논 것 같다. 19년 두 학기는 학교 공부는 했지만, 그보다는 하루 네 시간씩 고정적으로 문학에 할애하느라 바빴다. 그런 와중에 동아리 활동까지 했다. 그때 참 많은 것을 손에 쥐고자 애썼다. 군 입대한 뒤 개인 정비 시간, 야간 근무 중 여유 시간에는 마찬가지로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꿈을 이루고자 상당히 많은 즐거움을 포기했다. 사교 생활/취미 생활은 저버렸다. 가족과 해외 여행 갈 기회는 거부했다. 술자리는 드물었다. 초중고는 같은 지역에서 보냈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하고 있는 친구는 한 사람 뿐이다. 대학교에서는 신입생 떄 함께 지낸 일고여덟명만 그룹으로 꾸준히 만난다. 그 후 한 명 한 명 점의 형태로 만났지만, 그 가운데 얼마나 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두서 없이 글을 썼다. 내 자신이 무척 결함이 많은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긴다. 학업적으로, 커리어적으로 도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다른 경험과 기회에 도전하지 않고 있다 보는 편이 타당하다. 내 삶을 너무 낭만화/비극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졸업 학년 학생들이 통상 우울감 내지 불안감일 수도 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왔던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잃어갈 것인가? 막상 이렇게 질문을 적으니,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감이 안 온다.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 다니기, 풍족한 생활비, 좋은 학점, 가까운 친구들 몇 사람,... 나에게 있는 것을 적으니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여전히 허전함을 느낀다.
23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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