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께 하나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화요일 아침 기초회로이론 시험을 마치고 하루 내내 큰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시험을 굉장히 못보았습니다. 정확히 검토는 못했지만, 최악의 경우 30점, 최고로 보아도 45점을 받을 정도로 시험을 못 보았습니다. 학점으로 환산하면 C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무엇보다 여러분과 교수님께 너무 미안했습니다. 내가 여러분께 회로 이론에 대해 이야기나눌 자격이 있나, 학업과 공학, 포기하지 않는 자세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나 의심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도 실망시켜 죄송한 마음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열성을 다하여 학생을 위해 준비해주시는데, 좋은 결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망스러운 결과를 내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사흘간 수많은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입만 살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
“오카방에 의견 달지 않고, 내 공부를 더 했다면 어땠을까”
“뭔데 나서야”
“관종인가”
이러한 생각은 삶으로도 침투하였습니다. 계획한 운동도 하지 않고, 과식하고, 보지 않던 유튜브를 몇 시간씩 내리보고, 생활의 리듬감을 상실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계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더 심한 경우도 있겠지요.
기회이나 디논을 분명 공부했고 나름 과목의 핵심 내용은 이해했다고 믿었는데, 처참히 무너진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럴 때 처음 우리 머리가 낼 수 있는 적절한 설명은 “나는 재능이 없어”, 혹은 “나는 회로랑(전기전자공학, 특정 교수, 특정 분야) 맞지 않아” 입니다. 전지전자공학을 복수 전공하려는 다른 과 학생분들은 이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냥 내 전공이나 제대로 할걸.”
이러한 생각과 의심이 증폭되면 다른 선택지를 기웃거립니다.
“이 과정을 앞으로 학부 기간 동안 3년, 대학원 간다면 10년, 어쩌면 평생을 반복해야 하는데, 못하겠다.”
“공학은 내 길이 아니다. 수능 다시 공부해서 진로가 보장되는 의대를 가자.”
“다른 과로 전과할까?”
“회로랑 반도체 분야는 절대 가지 말자.”
“나는 무능하다.”
나는 지난 시험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연습할 때는 잘 됐는데, 실전에서는 그렇게 죽을 쑤었을까? 군대를 다녀와서 머리가 굳은 것인가? 오카방과 수업에서 질문과 발표를 많이 한다는 사실만으로 자만한 것일까?
연습할 때 종이 여러 장을 펼쳐놓고, 이것저것 살펴보기를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고 적절하지 않으면 다시 그림을 그려서 답을 찾곤 합니다. 그런데 시험에서는 분명 이 방식이 아닌 것 같은데, 계속 같은 것을 고수했습니다. 잘못 읽은 문자, 잘못 적은 문자를 재빠르게 수정하지 않고, 같은 생각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종이 하나를 새로 꺼내어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식을 새로 쓰면 될텐데, 이상하리만치 손과 머리가 안 움직였습니다. 이를 시험 준비 소홀이라도 해도 되겠습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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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도 성적이지만, 무엇보다 여러분과 교수님께 너무 미안했습니다. 내가 여러분께 회로 이론에 대해 이야기나눌 자격이 있나, 학업과 공학, 포기하지 않는 자세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나 의심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도 실망시켜 죄송한 마음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열성을 다하여 학생을 위해 준비해주시는데, 좋은 결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망스러운 결과를 내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사흘간 수많은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입만 살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
“오카방에 의견 달지 않고, 내 공부를 더 했다면 어땠을까”
“뭔데 나서야”
“관종인가”
이러한 생각은 삶으로도 침투하였습니다. 계획한 운동도 하지 않고, 과식하고, 보지 않던 유튜브를 몇 시간씩 내리보고, 생활의 리듬감을 상실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계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더 심한 경우도 있겠지요.
기회이나 디논을 분명 공부했고 나름 과목의 핵심 내용은 이해했다고 믿었는데, 처참히 무너진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럴 때 처음 우리 머리가 낼 수 있는 적절한 설명은 “나는 재능이 없어”, 혹은 “나는 회로랑(전기전자공학, 특정 교수, 특정 분야) 맞지 않아” 입니다. 전지전자공학을 복수 전공하려는 다른 과 학생분들은 이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냥 내 전공이나 제대로 할걸.”
이러한 생각과 의심이 증폭되면 다른 선택지를 기웃거립니다.
“이 과정을 앞으로 학부 기간 동안 3년, 대학원 간다면 10년, 어쩌면 평생을 반복해야 하는데, 못하겠다.”
“공학은 내 길이 아니다. 수능 다시 공부해서 진로가 보장되는 의대를 가자.”
“다른 과로 전과할까?”
“회로랑 반도체 분야는 절대 가지 말자.”
“나는 무능하다.”
나는 지난 시험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연습할 때는 잘 됐는데, 실전에서는 그렇게 죽을 쑤었을까? 군대를 다녀와서 머리가 굳은 것인가? 오카방과 수업에서 질문과 발표를 많이 한다는 사실만으로 자만한 것일까?
연습할 때 종이 여러 장을 펼쳐놓고, 이것저것 살펴보기를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고 적절하지 않으면 다시 그림을 그려서 답을 찾곤 합니다. 그런데 시험에서는 분명 이 방식이 아닌 것 같은데, 계속 같은 것을 고수했습니다. 잘못 읽은 문자, 잘못 적은 문자를 재빠르게 수정하지 않고, 같은 생각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종이 하나를 새로 꺼내어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식을 새로 쓰면 될텐데, 이상하리만치 손과 머리가 안 움직였습니다. 이를 시험 준비 소홀이라도 해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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