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학 수업
수요일에는 인문대학 전공 시험을 하나 보았습니다. 오픈북, 온라인, 비통제 1시간 에세이 시험이었습니다. 상당히 자신 있는 과목이었는데, 전날 기회이 시험을 못 보니까 이 역시 의심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했는가?
시험에 나올법한 에세이 질문을 6개를 만들어, 실제 시험에서 할 수 있는 답의 두 배 분량을 미리 준비해갔습니다. 그리고 책 단원마다 핵심적인 스토리와 사상을 엑셀로 정리하고, 어려운 낱말의 의미와 중요한 글귀를 페이지와 함께 적어갔습니다.
실제 시험에서 6개의 질문이 나왔는데, 3개는 제가 스스로 만들어본 문제와 유사하여 변형한 답을 적어냈습니다. 다른 질문들은 정리한 자료에서 구절과 내용을 끌어오고, 그 내용만으로 부족하면 빠르게 페이지로 넘어가 추가로 썼습니다.
인용문과 자료 정리를 준비해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분명 특정 스토리를 말하고 싶을 때, 부정확한 인용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혹은 그 내용을 찾느라 페이지를 넘기느라 시간을 소모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한 두 문제는 답을 충분히 작성하지 못했을 테지요.
그런데 준비 과정이 없었다고 해서 제가 그간 했던 공부가 무용했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교수님 말을 외우려하지 않고, 시험에 필요한 부분만 잽싸게 잡아채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늘 책을 혼자 읽고 먼저 생각해보고 수업에 임했습니다. 시험 전날 정리 과정이 체계적인 사고를 갖추고 실제 시험에 도움이 된 것은 틀림없지만, 시험 공부가 그간 공부의 핵심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2. 디지털논리회로 시험
오늘(목요일) 토카안 교수님의 디지털논리 회로 시험을 보았습니다. [오픈북, 온라인, 검색 허용]
지난 퀴즈에서 시간이 무척 부족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고민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Truth Table, k-map, 밴다이어그램, 게이트 그림 그리는데 쏟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를 대비하고자 3, 4 k-map 그림을 30개 복사해 출력해갔고, 읽기 편하게 각 칸마다 정보를 다 표시해두었습니다. 밴다어그램도 20개 복사 출력해갔으며, 이 문제에는 이 그림이 있으면 편하겠다 싶으면 다 준비해갔습니다. 종이 쪽수 총 합은 30쪽 되는 듯합니다. 덕분에 상당히 많은 문제를 30초 [평균 문제 풀이 시간 2.7분] 내에 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0분당 풀어야 하는 최소 문제 수를 모니터 아래 붙여놓아 속도를 조절했습니다. 각 문제에서는 어떤 계산기 프로그램을 쓰고, 어떤 것은 손으로 할지 미리 정해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쉽게 틀린 문제가 꽤 있었습니다. 상당히 쉬운 truth/false 문제를 풀 때, 교수님이 설마 여기서 문자를 꼬아서 낼까 잘못된 추측을 하여, 시간 절약을 위해 게이트 하나하나 검토하지 않고 그림만 보고 비슷하다 싶으면 답을 골랐습니다. 이렇게 푼 문제들은 다 틀렸습니다. 배점이 낮아 시간 관리를 위해 전략적으로 취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세 문제씩이나 틀리니 아쉽기는 합니다.
제가 생각에 오늘 디논 시험을 70% 밑으로 받으신 상당히 많은 학생 분들은, 성적이 높은 다른 학생에 비해 공부를 덜했다기 보다는, 이와 같은 시간 절약 방법들은 덜 활용하시고 손으로 일일이 풀다 오류를 많이 내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시험을 같은 시간을 주고 지금 풀라도 해도, 제가 준비한 종이와 자료, 프로그램이 없으면 70%도 못 받을 것 같습니다.
높은 점수를 받으신 학생분들은 각자 전략을 잘 세우셨고, 잘 준비하셨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에 익숙하지 않아 시험을 망쳤다면, 여러분의 공학적 자질이 부족해서는 아니란 점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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