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달 덕분에 사기는 어느 때보다 쉽고 만연해졌습니다. 학술 환경에서의 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단지 통신 장비를 활용해 남에게 답을 받거나, 누구를 고용해 숙제를 대신하게 하는 것과 같은 국소적인 의미의 사기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공지능 작문 기술의 발달(GP3-3)로 학생의 수고로움 없이, 대학 과제 A+ 수준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학부 수준의 코딩 과제는 인터넷 짜깁기만으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얻은 성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학점 4.3으로 진리 장학금 480만원 받기? 친구에게 자랑하기? 삼성전자 면접관 앞에서 이곳 지원자 중에서 내가 학점 제일 좋다고 자랑하기?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박사 과정 가서 역량 부족으로 중도 포기할 것이고, 느리고 천천히 공부해 성적이 낮던 친구보다 사회인으로서 더 뒤처질 것이며, 삼성전자 다니다 항상 평가 하위권에 맴돌고 회사가 내게 기회를 안 준다며 불평하다가 37살 쯤에 퇴사해야겠지요.
***
학술적 사기와 사기가 아닌 것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30시간을 논문을 찾아가며 공들여 쓴 한국어 보고서를 구글로 번역해 수정하고 제출한다면 부정행위인가요? 프로그래밍 문제 해결을 위해 30개의 페이지를 몇 차례고 반복해서 보다가 기막힌 한 문장을 찾아, 적용해 버그가 해결되면 부정인가요?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모호함을 없애기 위해 구 시대의 교육으로 회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으로 보입니다. 실생활에서는 컴퓨터로 모든 것을 구현하고 컴퓨터로 에러를 잡는데, 교수가 인위적으로 만든 에러를 종이조각에서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도 모르는 공식이 있으면 구글링하고 서가에 꽂힌 책을 펼쳐서 확인하는데, 학부생들은 왜 일주일 지나면 까먹을 공식을 외우고 있나요?
***
나는 전통적인 교육관에서는 용납되지 않은 방법을 실제 교육 현장에서 적용하며, 최대한 주변 사람에게 전파하고자 애씁니다. DLC 교과목 CLASSUM(온라인 학생 토론 공간)에 나는 동료 학생들에게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보고, 시험 현장에서 쓰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교수가 싫어하지 않을까 내게 염려의 소리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는 부정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장려할만한 일이라 굳게 믿습니다. 모든 일이 연결된 시대에 차단된 채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일은 아무 쓸모 없습니다. 모든 계산을 컴퓨터가 해주는 시대에 손계산 정확하게 하는 것은, '나 머리 번쩍번쩍해' 라는 사실만 뜻합니다.
***
100여 명이 있는 줌 교실에서 나는 교수자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비디오를 켜고 수업 듣습니다. 교수가 피피티를 넘기는 막간을 이용해 아무도 안 쓰는 오디오를 켭니다. d가 무엇의 약어인지 간단한 질문부터, 이 교과목이 차세대 컴퓨팅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지에 대한 다소 막연한 질문까지 합니다. 수업은 필기하지 않으며, 대체로 딴짓을 합니다. 연세 교원 정보 가서 토카안 교수님이 어디 대학에서 연구자로서 역량을 쌓았는가 보고, 연구실에서 어떤 논문이 나왔는지 봅니다. 수업 듣다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장에다가 적어 줌 채팅창이나 CLASSUM에 올립니다. 자세도 건들건들합니다. 팔짱 끼거나, 기지개를 펴고, 다리고 비비 꼬거나, 쪼그려 앉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내가 학업적으로 태만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수업에 대충 임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천재여서 한 번만 들어도 다 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수업 들으려고 죽어라 공부합니다. 한 주에 22시간 수업 듣고, 1주차부터 30시간씩 공부하고, 매주 10시간 넘게 책 읽습니다. 1월부터 학회 튜터링을 챙겨듣고, 유튜브를 보고, 백준 프로그래밍 문제를 낑낑대며 풀었습니다. 그 덕에 나는 복습을 하지 않습니다. 시험 전에 벼락치기 하지 않습니다. 그 덕에 누가 너 10분 뒤 시험 본다해다도 느닷없이 말한다해도, 당황하지 않고 볼 수 있습니다.
***
이렇게 생긴 막대한 여유를 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쓸 수 있습니다. 하나는 프셋의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입니다.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하지만 재미없어서 거의 안 합니다. (그래서 나는 성적은 좋은 편이지만, 천장을 뚫을 수준은 아닙니다. 노골적으로 말해 진리(성적) 장학금을 코앞에서 놓칠 수준입니다.)
두 번째는 다른 학생들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이 방식이 훨씬 끌립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께 성장한 학생들이 언젠가 같은 팀이 되어 협력해야 할 사람들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실험 수업 조원이거나, 동료 대학원생이거나, 회사 선후배동료가 될 것이며, 결국은 기술생태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도 옆 사람에게 가능한 도움을 주길 바랍니다. CLASSUM에 게시물 올리는 것이 성적을 높이는 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될지언정, 꽤 괜찮다 싶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올리길 바랍니다. 친구의 실력이 올라서 내 성적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서로 돕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우리가 헤맬 때, 3000 과목에서 C 성적이 예상된다거나, 대학원 2학기를 마치고 자퇴하고 싶을 때, 이 회사가 도저히 마음에 안 들어 이직을 원할 때, 결국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인터넷 게시판 속 익명1,2,3,5 (익명4는 자기 댓글을 지웠네요.)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 받았던 사람입니다.
***
지적 양심을 주제로 시작해 삼천포로 빠져버렸네요.
진실하길 바랍니다. 누가 느리고 우둔하다 할지라도 지적 양심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코 앞에 답지가 있어도 덮어두고 고생하시길 바랍니다.
옆 사람을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단,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공동체에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익명에 의존하지 말고, 수지타산 셈하지 말고, 이 생각이 멍청할까 염려하지 말고, 일단 CLASSUM과 오픈카카오톡에 의견을 올리길 바랍니다. 다른 과목에서는, 삶의 다른 단계에서는 다른 길을 찾아 지적 성과물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화이탱~ ^^
'공학관 악동 |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석법은 알지만 설계법은 모른다. (0) | 2023.04.03 |
---|---|
족보, 방 안의 코끼리 (0) | 2023.03.02 |
쉬운 퀴즈 망치고 (0) | 2022.05.01 |
[시험 망침 시리즈4] 시험의 너머 (0) | 2022.05.01 |
[시험 망침 시리즈3] 대면과 비대면 시험 (0) | 2022.05.01 |
기술의 발달 덕분에 사기는 어느 때보다 쉽고 만연해졌습니다. 학술 환경에서의 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단지 통신 장비를 활용해 남에게 답을 받거나, 누구를 고용해 숙제를 대신하게 하는 것과 같은 국소적인 의미의 사기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공지능 작문 기술의 발달(GP3-3)로 학생의 수고로움 없이, 대학 과제 A+ 수준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학부 수준의 코딩 과제는 인터넷 짜깁기만으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얻은 성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학점 4.3으로 진리 장학금 480만원 받기? 친구에게 자랑하기? 삼성전자 면접관 앞에서 이곳 지원자 중에서 내가 학점 제일 좋다고 자랑하기?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박사 과정 가서 역량 부족으로 중도 포기할 것이고, 느리고 천천히 공부해 성적이 낮던 친구보다 사회인으로서 더 뒤처질 것이며, 삼성전자 다니다 항상 평가 하위권에 맴돌고 회사가 내게 기회를 안 준다며 불평하다가 37살 쯤에 퇴사해야겠지요.
***
학술적 사기와 사기가 아닌 것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30시간을 논문을 찾아가며 공들여 쓴 한국어 보고서를 구글로 번역해 수정하고 제출한다면 부정행위인가요? 프로그래밍 문제 해결을 위해 30개의 페이지를 몇 차례고 반복해서 보다가 기막힌 한 문장을 찾아, 적용해 버그가 해결되면 부정인가요?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모호함을 없애기 위해 구 시대의 교육으로 회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으로 보입니다. 실생활에서는 컴퓨터로 모든 것을 구현하고 컴퓨터로 에러를 잡는데, 교수가 인위적으로 만든 에러를 종이조각에서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도 모르는 공식이 있으면 구글링하고 서가에 꽂힌 책을 펼쳐서 확인하는데, 학부생들은 왜 일주일 지나면 까먹을 공식을 외우고 있나요?
***
나는 전통적인 교육관에서는 용납되지 않은 방법을 실제 교육 현장에서 적용하며, 최대한 주변 사람에게 전파하고자 애씁니다. DLC 교과목 CLASSUM(온라인 학생 토론 공간)에 나는 동료 학생들에게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보고, 시험 현장에서 쓰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교수가 싫어하지 않을까 내게 염려의 소리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는 부정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장려할만한 일이라 굳게 믿습니다. 모든 일이 연결된 시대에 차단된 채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일은 아무 쓸모 없습니다. 모든 계산을 컴퓨터가 해주는 시대에 손계산 정확하게 하는 것은, '나 머리 번쩍번쩍해' 라는 사실만 뜻합니다.
***
100여 명이 있는 줌 교실에서 나는 교수자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비디오를 켜고 수업 듣습니다. 교수가 피피티를 넘기는 막간을 이용해 아무도 안 쓰는 오디오를 켭니다. d가 무엇의 약어인지 간단한 질문부터, 이 교과목이 차세대 컴퓨팅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지에 대한 다소 막연한 질문까지 합니다. 수업은 필기하지 않으며, 대체로 딴짓을 합니다. 연세 교원 정보 가서 토카안 교수님이 어디 대학에서 연구자로서 역량을 쌓았는가 보고, 연구실에서 어떤 논문이 나왔는지 봅니다. 수업 듣다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장에다가 적어 줌 채팅창이나 CLASSUM에 올립니다. 자세도 건들건들합니다. 팔짱 끼거나, 기지개를 펴고, 다리고 비비 꼬거나, 쪼그려 앉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내가 학업적으로 태만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수업에 대충 임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천재여서 한 번만 들어도 다 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수업 들으려고 죽어라 공부합니다. 한 주에 22시간 수업 듣고, 1주차부터 30시간씩 공부하고, 매주 10시간 넘게 책 읽습니다. 1월부터 학회 튜터링을 챙겨듣고, 유튜브를 보고, 백준 프로그래밍 문제를 낑낑대며 풀었습니다. 그 덕에 나는 복습을 하지 않습니다. 시험 전에 벼락치기 하지 않습니다. 그 덕에 누가 너 10분 뒤 시험 본다해다도 느닷없이 말한다해도, 당황하지 않고 볼 수 있습니다.
***
이렇게 생긴 막대한 여유를 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쓸 수 있습니다. 하나는 프셋의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입니다.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하지만 재미없어서 거의 안 합니다. (그래서 나는 성적은 좋은 편이지만, 천장을 뚫을 수준은 아닙니다. 노골적으로 말해 진리(성적) 장학금을 코앞에서 놓칠 수준입니다.)
두 번째는 다른 학생들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이 방식이 훨씬 끌립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께 성장한 학생들이 언젠가 같은 팀이 되어 협력해야 할 사람들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실험 수업 조원이거나, 동료 대학원생이거나, 회사 선후배동료가 될 것이며, 결국은 기술생태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도 옆 사람에게 가능한 도움을 주길 바랍니다. CLASSUM에 게시물 올리는 것이 성적을 높이는 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될지언정, 꽤 괜찮다 싶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올리길 바랍니다. 친구의 실력이 올라서 내 성적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서로 돕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우리가 헤맬 때, 3000 과목에서 C 성적이 예상된다거나, 대학원 2학기를 마치고 자퇴하고 싶을 때, 이 회사가 도저히 마음에 안 들어 이직을 원할 때, 결국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인터넷 게시판 속 익명1,2,3,5 (익명4는 자기 댓글을 지웠네요.)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 받았던 사람입니다.
***
지적 양심을 주제로 시작해 삼천포로 빠져버렸네요.
진실하길 바랍니다. 누가 느리고 우둔하다 할지라도 지적 양심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코 앞에 답지가 있어도 덮어두고 고생하시길 바랍니다.
옆 사람을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단,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공동체에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익명에 의존하지 말고, 수지타산 셈하지 말고, 이 생각이 멍청할까 염려하지 말고, 일단 CLASSUM과 오픈카카오톡에 의견을 올리길 바랍니다. 다른 과목에서는, 삶의 다른 단계에서는 다른 길을 찾아 지적 성과물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화이탱~ ^^
'공학관 악동 |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석법은 알지만 설계법은 모른다. (0) | 2023.04.03 |
---|---|
족보, 방 안의 코끼리 (0) | 2023.03.02 |
쉬운 퀴즈 망치고 (0) | 2022.05.01 |
[시험 망침 시리즈4] 시험의 너머 (0) | 2022.05.01 |
[시험 망침 시리즈3] 대면과 비대면 시험 (0) | 2022.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