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관 악동 | 잡담

8월말 무렵, 학부 인턴으로 있던 연구실에서 다함께 학회 겸 MT를 다녀왔다.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학기 중에는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 방학에 돌아갈 계획이다.) 학회 신청을 안 한 인턴과 대학원생들은 하루 오후만 짧게 있으며 교수님과 대학원 선배의 발표를 듣고, 대부분의 시간은 놀았다. 매일 수영장에 가고, 바다도 가고, 족구도 하고, 밤에는 바베큐와 마피아 게임도 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학회는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으나, 동시에 내가 그동안 잃어왔던 것 그리고 앞으로 잃어갈 것들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 또래에서 대여섯살 많은 사람들과  나흘 동안 붙어있으면서 그들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내 삶의 궤적이 남들과 꽤 다름을 느꼈다. 느끼고 또 느꼈다.   나는 ..
[23-1학기] 학점 공약 [100% 달성] — 공학관 악동 (tistory.com) https://akdong55.tistory.com/83 학기 초반 4.1, 3.9를 못 넘으면 60, 150만원을 내겠다고 공약을 낸 바 있다. 다행히 이번 학기도 4.2를 받았다. 김학배 교수님 기초회로이론은 꽤 좋은 성적을 받았는데, 재수강이라 A0가 최대인 점은 다소 아쉽긴 하다. 운이 좋았다. 경계를 간신히 넘은 과목이 많다. 1. 득어망전 물고기를 잡았으면 어망(그물)은 잊어야 한다. 2. 기초전기전자재료 수업 수강 취소, 전자기학2/전자회로2 신청 금현성 교수님 기초전기전자재료 OT를 듣고 수강 취소를 했다. OT의 요지는 간단했다. 절대평가니까 열심히만 하면 학점을 잘 줄테니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해보라,..
2학년 후배를 위해 글을 쓴다.  어려운 이유 - 요구하는 역량과 스킬이 다양하고 많다.  나는 이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우리 학과는 오전에 하는 공부와 오후에 하는 공부가 판이하고, 월수에 하는 공부가 화목에 하는 공부와 다를 수 있다. 아침에는 수학 문제 풀고, 점심에는 암기 달달 하고, 저녁에는 코딩을 할 수 있다. 이충용 교수님은 이를 두고 과목 간 homogeneity(동질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예컨대 화학공학과를 보면 전공은 대체로 물리화학, 유기화학을 베이스로 뻗어나간다. 그 말인 즉 코어 과목 몇 개만 잘 잡아두면 뒷 과목 공부가 쉬워지고, 반대로 몇 과목 놓쳐도 3,4학년 때 앞 내용을 다시 익힐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다른 인문/사회/경영/공학/이학도 얼마간 통용된다. 몇 ..
1. 번아웃 이야기 학점은 1-1학기 (18-1)이 가장 안 좋지만, 가장 큰 위기를 겪은 학기는 2-2학기 (22-1) 입니다. 문학과 공학 사이의 갈림길에서 한참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무렵 남은 일생 동안 공학으로 필요한만큼만 돈을 벌면서, 매일매일 3시간씩 글을 쓸 생각을 했습니다. 전업 작가로 살면, 부모님이 용납하지 않고 재정 지원을 안 해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이 가능할지 시험해보고자 7전공 21학점을 도전합니다. 5전공은 전기전자 과목이었고, 2전공은 3/4000단위 문학 수업이었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학점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재수강을 통해 한 과목만 지우면, 3.8이니 19학점을 이수한 것이니 선방했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극도의 우울과 불안에 시달렸고, 둘..
전자회로2 민병욱 교수님께서 학기 초반에 하신 말씀이다. 회로 공부에 대해 하신 말이지만, 공학 일반에 대해 적용해도 괜찮은 말이다. "분석법은 알지만 설계법은 모른다" 오늘날 공학교육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아닐까. 학교 성적의 대부분은 중간/기말 두 차례의 시험으로 결정되고, 그로 인해 상당 수의 학생들은 프로젝트, 시뮬레이션/코딩/직접 해보기는 경시하고 수업 통과 기준만 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나아가 최대한 프로젝트가 없는 수업만 챙겨 들으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의 최극단은 프로젝트조차 족보로 해결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익명의 선배에게 족보를 사서 파일 몇 줄 바꾸고, 텍스트의 배치만 바꾸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제공하는 의의는 학생들더러 고민하고 조건을 바꿔보고 직접 해보며 개념을 체화..
오늘은 전기전자 전공 족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고자 합니다. 2학년에 올라오시는 신촌 새내기 분들을 대상으로 글을 씁니다.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족보 사야하는가? "사면 좋다." (1) 족보를 타지 않는 수업을 듣는 것이 최선이다. (강의평을 보고 선별) 1) 시험 문제가 쉬운 편이다. (예제, 과제 수준이다.) 2) 시험 문제가 광범위하지만 예측가능하다. (프셋 전체 중) 3) 작년 기출 문제를 제공하신다. 4) 교수님이 수업을 처음 하시거나, 최근 5년 이상 수업 한 적이 없다. (2) 족보 의존도가 매우 높은 수업은 사는 편이 낫다. 1) 문제 유형이 예측 불가능하지만, 족보에서 그대로 내신다. 2) 어떤 문제가 나올지 종잡을 수가 없다. (평균 30점 미만 시험 혹은 강의 ..
기술의 발달 덕분에 사기는 어느 때보다 쉽고 만연해졌습니다. 학술 환경에서의 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단지 통신 장비를 활용해 남에게 답을 받거나, 누구를 고용해 숙제를 대신하게 하는 것과 같은 국소적인 의미의 사기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공지능 작문 기술의 발달(GP3-3)로 학생의 수고로움 없이, 대학 과제 A+ 수준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학부 수준의 코딩 과제는 인터넷 짜깁기만으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얻은 성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학점 4.3으로 진리 장학금 480만원 받기? 친구에게 자랑하기? 삼성전자 면접관 앞에서 이곳 지원자 중에서 내가 학점 제일 좋다고 자랑하기?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박사 과정 가서 역량 부족으로 중도 포..
퀴즈 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름 준비 많이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긴장한 상태에서 계산기 오타 내서 3점 날아갔네요. (모르는 문제로 3점 더 날라갔습니다.) 제게도 상당히 생소하고 힘든 시험 형식이었습니다. 시간이 1시간 주어지고, 문제를 앞뒤로 오갈 수 있다면, 아마 평균 점수가 21/25점은 될 것입니다. 문제가 어렵기 보다는 상황이 어려워 평균 점수가 16-17점이 나온 듯 싶습니다. (교수님은 이 점수를 두고 꽤 괜찮다고 표현하셨는데, 아마 작년 대비해서 일 것입니다.) 여러분 중 패닉이 와 몇 문제를 통으로 날리신 분, 어처구니 없이 틀리신 분,토카안 교수님이 원망스러운 분, 윤홍일, 이상윤 교수님의[이번 학기 다른 디논 교수님들] 이름이 아른아른 거리시는 분 ..., 다양한 학생들이 ..
사실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1. 기초회로이론을 못 보았다고 회로와 반도체 분야를 내던지지는 마세요. 기회이 중간고사 B나 C 성적 받았으면 기말 잘 봐서 A 마이너스, B 받으면 됩니다. 혹시 그점이 여의치 않으면, 기초아날로그실험이나 전자회로, 3000, 4000, 대학원 수업 청강이라도 하며 자신에게 역량과 지식이 있음을 증명하면 됩니다. 디논 못 보면, 기초디지털실험이나 신호와시스템 선형대수학 등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2. 시험에 약하면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입증하면 됩니다. 연구 경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나 작문 등으로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면 됩니다. 만약 기업이나 대학원 면접에서 왜 성적이 낮은지 물어보면, 제가 공부는 꽤 하는데 시험 공부는 싫어합니다. 궁색한 답변을 내놓..
온 세계가 비대면 체재로 돌입한 지난 2년 동안 나는 경기도의 외진 곳에서 복무하느라 대학 환경에서도 멀리 있었습니다. 비대면과 온라인의 적응성의 측면에서 보면 다소 뒤쳐졌다고 말해도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세 시험을 보면서 느낀 것은, 비대면 시험이 요구하는 자질이 대면 시험이 요구하는 자질과 사뭇 다르다는 점입니다. 대면 시험은 필기구만 달랑 들고가도 시험 보는 학생들간의 환경 차이가 거의 없지만, 비대면 시험은 적절한 환경과 전략을 준비해가느냐에 따라 성적에 있어서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면 시험에서는 주어진 그림 위에 문제를 풀면 되지만, 비대면 시험에서는 직접 그림을 그려야하기 때문에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은 의지가 상당히 떨어집니다. 대면 시험의 그림은 복잡해도 그 위에 ..
1. 철학 수업 수요일에는 인문대학 전공 시험을 하나 보았습니다. 오픈북, 온라인, 비통제 1시간 에세이 시험이었습니다. 상당히 자신 있는 과목이었는데, 전날 기회이 시험을 못 보니까 이 역시 의심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을 했는가? 시험에 나올법한 에세이 질문을 6개를 만들어, 실제 시험에서 할 수 있는 답의 두 배 분량을 미리 준비해갔습니다. 그리고 책 단원마다 핵심적인 스토리와 사상을 엑셀로 정리하고, 어려운 낱말의 의미와 중요한 글귀를 페이지와 함께 적어갔습니다. 실제 시험에서 6개의 질문이 나왔는데, 3개는 제가 스스로 만들어본 문제와 유사하여 변형한 답을 적어냈습니다. 다른 질문들은 정리한 자료에서 구절과 내용을 끌어오고, 그 내용만으로 부족하면 빠르게 페이지로 넘어가 추가로 썼습니..
여러분께 하나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화요일 아침 기초회로이론 시험을 마치고 하루 내내 큰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시험을 굉장히 못보았습니다. 정확히 검토는 못했지만, 최악의 경우 30점, 최고로 보아도 45점을 받을 정도로 시험을 못 보았습니다. 학점으로 환산하면 C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무엇보다 여러분과 교수님께 너무 미안했습니다. 내가 여러분께 회로 이론에 대해 이야기나눌 자격이 있나, 학업과 공학, 포기하지 않는 자세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나 의심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도 실망시켜 죄송한 마음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열성을 다하여 학생을 위해 준비해주시는데, 좋은 결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망스러운 결과를 내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사흘간 수많은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